임신 8주가 되면 태아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태동은 커지고, 태아는 엄마의 목소리에 감응한다. 엄마의 스트레스에 따라 딱딱하게 뭉치기도하고, 엄마의 평온함에 따라 몸은 다시 풀린다. 태아는 심리적으로는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탯줄로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자궁 안은 생애주기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다.
아이들은 숨는 놀이(숨바꼭질)를 즐긴다. 가령 책상 아래 은폐된 곳, 커튼 사이, 베란다 잡동사니 뒤, 혹은 옷장, 아이들은 자궁이 연상되는 이런 곳에서 잠깐 숨는 것으로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 성인의 퇴행욕구는 보다 상징적이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캡슐 방, 사우나에 있는 1인용 동굴 방, 나의 내담자는 1년에 두 차례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홀로 강원도 산골짜기에 민박을 얻어 2박3일 정양을 즐기며 재충전한다. 모두가 엄마의 자궁을 연상하는 곳으로 편안함을 준다.
비록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생애주기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은 엄마의 자궁 안이다. 거기는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졌다. 먹는 일도 배설하는 일도 필요 없다. 그러나 출생이후부터는 내 스스로 해야 할 것이 생긴다. 우선 엄마의 젖가슴을 찾아 빨아야 한다. 원하는 것을 신호로 엄마에게 보내야 한다. 신호에 대한 반응은 불완전하다. 사는 일은 정말 힘들다. 사람들은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가 있다. 아동은 물론, 상징화된 성인의 숨바꼭질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에 충분한 퇴행놀이이다. 퇴행은 허용되어야 하고 즐겨야 한다. 마음의 병은 퇴행자체가 아닌, 퇴행에서 현실로 나오진 못해서 생긴다.
도날드 위니캇은 정신과 몸은 하나의 단위로 움직인다고 했다. 태아는 정신과 몸이 하나의 단위로 통합된 안전한 상태로 있다. 이것은 가설만은 아니다. 성인들의 무의식을 분석해보면 힘들 때마다 자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발견된다. 그곳은 안전하고 평온한 곳이기 때문이다. 자궁 안과 밖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곳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곳은 육신을 가진 인간존재의 기원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엄마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
자궁에서 막 나온 신생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의 연속성은 위니캇의 정신분석이론을 꿰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했다. 엄마는 시간과 공간의 세상으로 나온 유아를 3~6개월까지는 자궁안과 같은 가장 완벽한 상태로 돌봐주어야 한다. 유아는 매우 평화스러워 보인다. 유아의 잠든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은 상태, 웃는 것 같거나 우는 것 같은 모습. 유아는 이런 배냇짓을 하면서 태아상태를 한동안 유지할 권리가 있다. 위니캇은 유아의 배냇짓을“원초적 상상적 구성물에 의한 자료”라고 했다.
유아는 지구별로 왔다. 원초적 상상적 구성물로는 지구에서 살 수 없다. 자아(ego)가 분화되어 성장해야 자기(Self)로 살 수 있다. 위니캇은 생애초기에 자기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자기는 타고는 잠재력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깊이 갇혀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성장해야 자기의 잠재력도 함께 분화되는데, 위니캇은 신생아의 자아는 조각이 나있는 상태라고 했다.
당신은 갑작스럽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가. 교통사고 현장의 아비규환을 목격했는가?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아 멍해진 적이 있는가. 또는 예상치 못한 부도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경험을 했는가. 우리는 그 때를 “맨붕(맨탈붕괴)”으로 표현한다. 시간과 의식이 딱 멈춰버려 멍해진 상태, 순간적으로 현실적 감각이 사라진 상태. 바로 그때가 자아가 조각난 상태이다. 이럴 때에 누군가의 전폭적 정서적 지원을 받는다면, 그는 곧 회복할 것이다.
초기 유아의 상태가 바로 이렇다. 이런 무의식의 상태가 다른 차원에서는 정상적일지 몰라도, 지구별에서는 비정상이다. 조각난 자아는 모아져 응집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의식이다. 자의식은 유아가 경험하는 “나는 ~이다”이다. 위니캇에 의하면, 생모는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유아의 욕구에 민감하도록 변한다. 엄마는 유아의 필요를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그것은 신의 경지, 모신에 속한다. 유아의 배고픔, 대소변 처리, 스킨십 요구, 추위 등, 울음소리만 듣고도 엄마는 유아의 욕구를 알아차린다.
유아는 엄마가 자신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내가 창조했다”로 경험한다. 위니캇은 이를 전능환상의 성취라고 했다. 전능환상의 반복적 성취는“나는 ~이다”라는 유아의 자의식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로 조각난 자아는 서서히 응집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기에 모신도 실패한다. 이런 실패가 반복되면 아이는 자지러질게 운다. 나는 생후 6개월이 되자마자 어린이 집으로 보내진 아이를 알고 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아기는 엄마 품에서 너무 자주 자지러질게 운다. 만 1년이 되어 어린이 집에 간 아이는 밤마다 악몽을 자주 꾸어서 자지러지게 운다. 낮에 어떤 일이 유아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유아와 돌보는 사람을 1:1관계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유아에게 자궁 안과 같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한 명의 보육교사가 생후 1년도 안 된 유아 몇 명을 돌본다면, 그것도 집중해서 볼 수 없는 환경이라면, 심리적 외상은 불가피하다. 위니캇은 이때 유아가 경험하는 것은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좀 더 쓰더라도 2년 정도는 1:1관계로 돌보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고 제안하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부는 있다. 대상관계이론을 공부한 사람으로 그럴 때는 마음이 아프다.
지금여기에서 적용
만일 누군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 제발 당신의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여 가르치려 말라. “내 경험에 의하면~”이나 “최선의 방법은~”하는 것들은 당신의 만족을 위한 자기애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아무런 판단도, 교육도, 비난도 하지 말고 무조건 정서적 지원을 하라. 지금 그의 자아는 조각나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당신은 그와 대책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는 힘들다. 그러나 퇴행할 자궁이 있으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당신만의 자궁을 가져라. 내 자궁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하지 말라. 당신의 자궁은 당신이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