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분석심리학-정신의 심층에 이르는 길(아니마, 아니무스)
남성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일수 있을까? 여성은 여성이면서도 남성일수 있을까? 사람들은 신의 본질에 성(性)을 부여하지는 않고, 다만 그 속성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신은 양성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 신으로부터 창조되거나 유출된 인간도 그러하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주 기능을 무엇으로 쓰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융의 체험을 예로 들어보자.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분석심리학이 태동했다. 융은 자신의 꿈과 환상을 이해하고 연구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과학일수 있느냐에 의문을 가졌다. 융의 연구는 과학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융은 자문했다. “나의 연구는 과학에 속하는가, 아니면 예술에 속하는가?”
놀랍게도 어느 순간에 한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예술이다.” 융은 그답게 그녀와 의미 있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내면화된 대상으로서, 융의 무의식적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융의 페르소나와 자아는 과학자이기를 원했으나, 무의식에서는 예술가이기를 원했던 것이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드러났다. 그녀는 인격화되지 않는 음성으로 출현했으나, 융과 대화가 진전됨에 따라 완전한 형태의 인격으로 드러났다. 융의 술회이다. “나는 그녀에게 어느 정도 경외감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방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융의 무의식 안에 있는 또 다른 성, 여성이었다. 사실 융은 생애 중요한 순간마다 이런 신비체험을 했고, 필자는 이런 체험들이 융 심리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융은 남성의 무의식 안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라틴어anima 영어soul)라고 했다. 페르소나가 외적 인격이라면 아니마는 내적인격이다. 남성의 경우에 외적인격은 남성이지만 내적 인격은 여성이다. 이처럼 한 인격 안에 두 개의 성이 있다. 남성은 겉은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다. 세상은 남성이 정복하지만, 여성은 남성을 정복한단 말은 이래서 나왔다. 융의 페르소나는 과학자이기를 원했으나, 내적 인격인 아니마는 예술가라고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과학자와 예술가는 서로 다른 대극이지만, 양자가 통합해야 온전한 심리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융은 알게됐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라틴어animus 영어spirit)라고 한다. 남자와 달리 여성은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강하다. 정신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캇은 남성들이 여성이 권력을 잡는 것을 집단적으로 방해하는 이유는 그녀들에 의해서 지배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남성은 부드러워 보이는 여성을 두려워해야 하고, 여성은 강해 보이는 남성을 돌봐야 한다. 외적 인격에는 그 반대의 특성을 가진 내적 인격이 있다.
아니마는 “기분”으로 대변할 수 있다. 부드럽고, 수용적이고, 친절한 특성을 말한다. 아니무스는 “의견”으로 대변할 수 있다. 논리적, 합리적, 추진력 등을 말한다. 중년에는 호르몬의 변화도 있지만 심리적인 변화에 따라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된다. 남성은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수용적이 되어야 진정한 자기가 된다. 여성은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있어야 진정한 자기가 된다. 개성화과정에서 먼저 그림자를 통한한 이후에야 자아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안내를 받아 자기Self에 이른다. 만일 자아가 내면의 어두운 인격인 그림자에 묻혀있다면, 내적인격은 분화되지 않아 그는 지극히 현세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반면 자아가 내적 인격에 이르렀다면, 그는 더 높은 내적 가치를 위하여 분투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품격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집단무의식에 속한 영혼의 안내자라고 했다. 영혼의 안내자는 자아를 정신의 중심으로서 정신 전체를 컨트롤하고 초자연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자기Self로 안내한다. 자아의 입장에서 볼 때에 페르소나는 외부대상과 관계하는 통로이고,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내적 인격과 관계 맺는 통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들의 수준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그림자의 수준에서 외적 가치관만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융 분석가 자격증을 가졌거나 분석심리학자라해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둘째는 내적 인격의 안내를 받아 내적 가치관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분석심리학을 모르고 무학자라고 해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말 것이 있다. 감상주의에 빠진 사람을 아니마가 잘 분화된 남성으로, 공격적인 사람을 아니무스가 잘 분화된 여성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원형으로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자아는 그 에너지의 일부를 빌어 사용하는 것이지, 그 에너지에 지배당하면 안 된다. 아니마에 지배당한 남성은 감정적이거나 변덕이 심하고 새침때기가 된다. 아니무스에 지배당한 여성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고 자기 말이 항상 옳아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아니마와 아니무스에도 그림자가 있다. 융의 심리학은 늘 이런 식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둔다. 이런 점에서 초월적이지만 현상적이다.
흔들림이 없고 안정적인 페르소나를 위해서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잘 분화(무의식의 일부가 의식의 것이 되는 것)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의 경우는 먼저 여성성을 발달시키고, 중년 이후에 아니무스를 분화시켜야 통합된 인격을 갖출 수 있다. 남성의 경우도 이와 같다. 예를 더 들어보자. 국회의원의 페르소나를 가진 남성이 있다고 하자. 그가 페르소나에만 충실하면, 권위적이거나 당리당략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내적 인격인 아니마를 분화시켜야 국민과 소통하고 국가의 건전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4가지의 발달단계를 다루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