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르소나
개성화의 강한 요청을 받는 40대 후반의 여성이 있다고 하자. 그녀의 자녀는 대학에 진학하여 엄마의 잔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편은 회사의 중견간부가 되면서 밤 12시가 되어야 귀가하고, 주말이면 접대골프를 다니느라 아내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있어도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녀는 엄마와 아내의 페르소나persona가 곧 자기인 것처럼 살아왔는데, 이제 엄마와 아내의 페르소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능을 못해 소외당했다. 그녀는 홀로된 기분인 빈 둥지 증후군의 우울증에 걸렸다. 게다가 갱년기가 와서 여성성에도 변화가 왔다.
그녀의 첫 번째 과제는 그동안 동일시된 자아와 페르소나를 탈동일시 해야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엄마 혹은 아내(혹은 본인의 사회적 직분)로 살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2. 그림자
그녀는 진정한 자기로 거듭나기 위해서 외부가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 봐야한다. 또한 외부상황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자기의 의지와도 무관하게 변한다. 비교는 끝없는 비교만 만들뿐 자기로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그럴수록 외부가 아닌 내면의 만족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첫 번째로 작업할 것이 그림자의 통합이다. 그림자는 자아가 외부에 맞추려다 무의식에 억압해 놓은 인격의 어두운 부분이다. 사람이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림자가 통합됨으로 덜 흔들리거나 빨리 빠져나온다.
그녀는 “나대는 사람”을 추하다고 미워했다. 그런데 자신 안에 “나대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르치려는 사람”을 정말 미워했다. 그런데 자신 안에도 “가르치려는 그림자”가 있었다. 이처럼 그림자를 인식하면 대부분은 부정한다. “아냐, 나에게는 그런 면이 없어.” 그리고 예전처럼 그림자는 억압하고 자아가 좋다고 여긴 것만 나인 것처럼 살아간다.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보면 라푼젤이 탑 밖으로 나와 첫 번째 대면하는 것이 어두운 동굴식당에 있는 자신의 그림자이다. 처음에는 놀래 그것들과 싸우려는 공격적 태도를 취한다. 그러다가 경계를 풀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소망을 알게 된다.
이처럼 그림자는 각자의 소망이 있었으나 자아가 무의식의 동굴에 억압하면서 흉측한 괴물이 된 것들이다. 그림자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된 그림자는 더 이상 외부로 투사할 필요가 없다. 그림자는 억압하지 않고 잘만 쓰면 자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대는 것은 자기표현의 능력이고, 남을 가르치려는 것은 자존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아는 개인무의식의 그림자를 통합해야만 집단 무의식으로 진입할 수 있다. 융은 그림자의 통합은 힘든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3. 아니무스/아니마
그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솔직해 지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과 그림자를 통합해냈다. 그림자 통합으로 개인무의식이 열리면 집단무의식의 아니무스(여성안의 남성성)를 만난다.
그녀는 꿈속에서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동경해온 가상 혹은 실재의 남성을 만난다. 그 남성은 희미하게 혹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떤 때는 멀리, 혹은 가까이 와 있다. 그녀는 그에게 황홀함과 성적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 남성상이 외부로 투사되면 실재로 그런 남성을 좋아하기도 한다. 중년의 러브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심리적 배경이다. 이를 아니무스라고 한다.
그녀는 아니무스의 황홀함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외부로 투사는 불가피하다. 아니무스는 영혼의 안내자이다. 아니무스가 분화된 그녀는 더 이상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타인에게 순응만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일을 용기 있게 추진하기도 한다.
여성이 아니무스가 분화되면, 보통 주변 사람들이 너 변했다고 말해준다. 그렇다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억압된 상태를 그리워하여 뒤로 돌아가면 개성화는 지연된다.
여성이 아니무스의 안내를 받으면 집단무의식의 다른 원형의 분화도 활발히 일어난다. 아니무스의 안내를 받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4. 원형의 분화
자아의 집단무의식 여행은 실로 감미롭다. 보통은 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꿈에 나타나는 태모, 진선미의 원형, 자연, 숫자 4 와 관련된 상징, 멋진 남성 등은 원형이미지로서 비록 꿈이지만 누미노제 체험(황홀함과 두려움)을 하게 한다.
이는 그녀가 원형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고 사용하고 있다는 사인이다. 이처럼 원형이 분화되면 그 엄청난 에너지가 자아를 압도한다. 자아는 자신이 원형의 인물이 된 것처럼 자기애에 빠지기도 한다. 이를 자아팽창, 마성인격이라고 한다.
이는 개성화과정에서 매우 조심해야 할 것으로, 계속적인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마성인격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그녀의 가치관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린다. 그녀는 이제 자기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5. 자기
원형을 아니무스 수준에서 의식화 시킨 분들은 매우 드물다. 인간의 정신적 삶에 크게 기여한 예술가, 작가, 종교인, 정치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충 정치인 심상정, 작가 박완서, 미국의 정신의학자 퀴블로로스가 떠오른다.
혹은 숨은 삶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녀는 원형의 의식화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목적을 획득했다. 삶은 언제나 힘들지만 목적이 분명하니 방향을 잃은 배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녀는 명상, 영적 독서,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대한 갈망 등으로 더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했다. 이 때 만나는 것이 개성화의 마지막 단계인 자기Self이다.
자기는 그녀를 초월적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그녀는 자기가 경험한 것에 확실히 붙들려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한계를 느낀다.
융은 선, 요가, 관상기도 등 오랜 수행으로 정신의 지평이 넓고 깊어진 사람들이 바로 이 상태라고 했다. 이 상태에서 자아는 육체, 의식, 집단무의식, 그리고 더 깊은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분리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전체이고 하나를 향해 간다.
*개성화는 자기의 자율성, 그리고 자아의 자기탐색의지로 진행되는 평생의 도반과정이다.
분당심리상담치료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성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