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강한 정동(emotion, 감정의 움직임을 강조)을 느껴 봤는가? 예술, 문화, 종교 등에서 받은 정동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적이 있는가? 혼자 명상이나 사색 중에 비범한 통찰을 얻은 적이 있는가? 당신은 에너지의 근원인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만난 것이다. 원형은 당신 삶의 이정표를 만들뿐만 아니라, 이정표대로 갈 수 있는 힘도 제공해 준다. 오늘 강의 주제는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다.
정신에도 층이 있다. 융의 정신 층은 현실원리에 잘 맞게 세팅된 의식, 개인경험에서 유래된 개인무의식(personal unconsciousness), 그리고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가 경험한 것들이 응축되어 보관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으로 나뉜다. 이처럼 융의 무의식은 파낼수록 끝이 없는 보고이다. 융 심리학에서 발달은 무의식의 보고를 얼마나 파서 내 것으로 소화했느냐에 달렸다. 융의 세계관에서 삶의 목표는 영적 진보이고, 그 정도는 동물적 수준에서부터 신의 속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집단무의식은 “전 인류의 공통적 무의식” 혹은 “초개인적, 보편적 무의식”이라 부른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길거리에 강도만난 사람이 쓰려져 있다. 지금이나 1 만 년 전 사람이나, 지구 한 쪽 끝 사람이나 다른 쪽 사람이나,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선행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세상에 이유 없는 당연은 없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는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도와줘야 선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미 깔려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무의식 상태에서 태어나고, 부모의 양육으로 무의식에서 자아의식이 서서히 분화된다. 아이일수록 집단무의식에 프로그램화된 인간성의 본질에 더 가깝다. 다만 자아의식이 아직 덜 분화되어 그것을 인지하거나 표현 못할 뿐이다. 정신병자는 세상이 두려워 무의식에 숨은 사람이다. 그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와 잘 대화를 해 보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정보나 치료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융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신병 환자와 대화함으로 치료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고, 정신병자는 건강한 사람의 스승이다.
융의 사례로 집단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더 해보자. 한 환자가 창밖으로 태양을 보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융은 그 이유를 물었더니 환자는 말했다. “저것 보세요. 태양의 한 가운데에 페니스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이지요. 내가 머리를 흔들면 저 페니스도 흔들거리며, 여기서 바람을 일으킵니다.”
당시 다른 정신과 의사는 이 말에 관심조차 없었을 거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려는 융은 달랐다. 융은 이 체험이 개인적 차원을 넘는 보편성임을 밝혔다. 환자의 말은 고대종교인 “미트라교”의 기도서에 있는 내용과 동일했다. 문헌의 내용이다. “태양으로부터 대통(筒)이 길게 늘어지게 매달려 있고, 그 대통이 서쪽으로 기울게 되면 동풍이 분다.” 물론 이 환자는 미트라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어떤 것이 움직여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은 고대 미트라교 신자의 마음속에 있었고, 신화의 내용이고, 이 환자의 마음에 있었고, 현대인의 무의식 심층에도 있다. 인류가 공유한 바람을 일으키는 그 어떤 것은 집단 무의식의 내용이다. 마음의 밑바닥으로, 현대인과 고대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면 인류는 하나의 신성(융은 이런 단일성을 Self라고 함)에서 파생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심리학을 개인무의식을 넘어 집단무의식으로까지 확장했다. 여기에 대해 심리학이 종교로 넘어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융은 그의 중심 주제인 개성화를 종교적이라고 인정했다.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집단무의식이 보편적이라면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는 말인가? 각자의 성격적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융은 개인의 성격차이는 의식과 개인무의식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한 심리유형을 들어 설명했다. 심리유형은 나중에 올리겠다.
집단무의식은 원형archetype으로 구성됐다. 원형은 “인류의 공통적, 보편적, 본능적 심리구조 내지는 본능적 힘의 원천이며 의식에 강한 영향력은 주는 심리적 경향성”이다. “형”이라고 해서 원형이 어떤 형태나 표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 환자가 본 태양과 대통은 원형 자체가 아니라 원형이 의식으로 올라오기 좋은 상징물에 불과하다. 원형은 정신의 하부구조에 있는바, 원형의 의식화는 자아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당신이 어떤 기회로 일상과는 다른 강한 정동체험을 했고, 그것이 당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면, 당신은 원형을 체험한 것이다.
나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설악산에 오른 적이 있고, 그 날 새벽에 대청봉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은 뭉클했고, 내 고민은 태양빛에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 길을 가야한다는 강한 암시를 받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석양을 매우 좋아했다. 석양은 신비한 황홀함으로 나를 압도했고, 나는 거대한 존재의 품 안에 편안히 안겨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황홀함의 이면에는 두려움도 있었다.
자아가 원형체험을 할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황홀함과 두려움이다. 원형 체험을 하면 자아는 주도권을 상실하고 원형에 압도된다. 융은 신학자인 루돌프 오토의 개념을 빌어 이러한 현상을 누미노제(신성한 체험)라고 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원형은 에너지 자체이며 원천인바, 자아가 원형과 동일시하면 자아팽창이라 하여 마성인격이 된다.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구세주다, 내가 악마다, 나는 나풀레옹이다, 하는 것들은 자아팽창의 현상이다.
원형은 모성원형, 부성원형, 영웅원형, 자기원형 등 다양하고, 그것은 꿈에 상징으로 잘 나타난다. 원형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는 블로그 강의의 한계는 느낀다. 모성원형을 설명하는 것으로 정신의 경계에 대한 블로그 강의를 마치겠다.
대지, 낯선 도시, 학교, 석기시대의 토우 등은 모성원형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엄마하면 그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엄마는 그러해야 한다”라는 유전인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유전인자 같은 것을 원형이라 한다. 원형은 틀(flame)로서 유전되는 것이지 내용으로 유전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러해야 한다”에서 그러해야하는 것의 내용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 발자국만 더 나가자. “저는 엄마하면 마녀가 떠오릅니다. 그것도 모성원형인가요?” 맞다. 모든 원형에는 그림자가 있다. 모성 원형은 엄마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식을 침범하고 갈취하는 모성의 그림자도 포함한다. 동화에 나오는 마녀는 바로 모성원형의 그림자가 투사된 인격이다.
분당심리상담치료
가나심리치료연구소 박성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