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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칼럼

조회수 10
제목 강박증에 대한 일언-마음의 독감도 끝은 있다
작성자 gana
작성일자 2020-10-15
《강박증에 대한 일언》
2003년 여름, 심리치료 임상에 막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재미동포 정신분석가가 잠깐 귀국하여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 시간, 나는 한 말 한 말 놓치지 않고 마치 신탁처럼 경청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함께 식탁에서였다.
나는 중증의 강박증 내담자를 떠올리며 답답한 심정으로 물었다.
“강박증 환자는 어떻게 치료 하나요?” 그 분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꼭 그 시선이 ‘당신이 어떻게 강박증 환자를 치료한다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말했다. “계속 통찰을 주셔야 합니다.” 그게 다였다.
답변의 요지를 이해는 했으나, 내게는 2프로가 아니라 98프로 부족한 답변이었다.
그 때는 그 답변이 참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어떻게 말해 주기가 힘들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게 맞는 말이기는 하다.

당시 나의 강박증 내담자는 면도 한 번 하는데 50분 걸렸고, 왕복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를 한 번 갔다 오는데도 50분 걸렸다.
이것으로 그의 강박증상이 어땠는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증상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강박증 환자를 종종 만났다.
강박증 환자는 자기만의 논리적 체계(틀)를 가지고 있다.
마치 굳건한 성을 쌓아 올려서 그 안을 빙빙 돌면서 불안한 안정을 겨우 얻는 것에 만족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을 열면 바깥세계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답고 다양하고 할 일도 많다.
그는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한다.
프로이트는 성적 욕구를 억압한 상징적 행동으로, 대상관계심리학자는 분리불안에 대한 상징적 행동으로, 융은 불안콤플렉스가 자아를 포진한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비합리적인 신념 때문이라 한다. 모두 맞다.

이들에 대한 치료적 접근은 공감과 침투(직면)과 병행해야 한다.
공감은 이들의 방어를 존중하며 분리 불안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그의 논리적 체계에 안주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

침투는 그의 논리적 체계, 즉 성벽에 조금씩 구멍을 내는 것이다. 그는 저항할 것이다.
구멍 밖으로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고, 구멍 밖에서 오는 외부의 자극을 두려워한다.
그는 구멍을 다시 막으려고 애쓸 것이고, 심리치료사는 계속 구멍을 내면서 그가 구멍에 적응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 끈질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치료사와 환자 모두 인내가 필요하다.

심한 강박증 환자는 신체화를 동반하고 있다.
그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16년 전에 내가 받은 답변. “통찰을 주어야 합니다.”
이 말에 비하면 강박증 환자의 심리치료에 대한 나의 일언은 거의 ‘천사의 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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