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노안이 오는 것은 책은 멀리하고 멀리 보는 연습을 하라는 거다. 난청이 오는 것은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거다. 몸에 기력이 쇠해지는 것은 마음여행으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돋보기를 쓰고 50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두통을 감내하면서 문자를 읽어내려 애쓴다. 하나라도 놓치면 뒤떨어질세라 서둘러 보청기를 구입해야 한다. 이왕이면 가는 날까지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누구나 경제적 수준만큼의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

사람은 생에 대한 집착력 혹은 애정은 이처럼 초월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생명본능이라 했다. 사람은 어디다 갔다 놔도 다 살게 마련이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 한파도, 영상 40도를 육박하는 기온도 사람의 생명본능을 능가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명본능보다 더 강한 것을 프로이트는 죽음본능이라 했다. 그런데 이 죽음 본능이 있음으로 생명은 순환된다. 죽음 본능은 생명본능에 기여한다.

사마귀는 짝짓기를 한 후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 후손을 위하여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다. 엄마의 젖과 정서적인 돌봄을 탐하는 아기의 본능은 거의 식인의 수준에 가깝다. 엄마의 죽음본능이 아기의 생명본능에 기여한다. 아기 돌보는 일에 탈진이 된 엄마는 아기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기를 키우는 일이 힘들지, 그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고 믿지 않는다. 그래야 아기를 키울 수 있다. 아기를 위해 죽음으로 그녀는 엄마로 재탄생된다.

나는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은 하나의 짝으로 순환된다고 믿는다.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에서 탄생된 심리학은 생명본능이 죽음본능보다 우월한 것으로 설정해야 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열등한 어떤 것으로 둔갑되어 버렸고, 많은 임종환자들이 그들의 손과 때가 묻어있는 집이 아니라 약물냄새 나는 중환자실에서 생에 마지막을 보낸다.

집에 환자를 돌보는 일손이 없어서 일어난 불가피한 상황이라지만, 생명본능이 우선시되는 사회적 풍조에서는 집 안에 빈손이 있을 리가 없다. 죽어가는 과정, 그리고 죽음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공유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날에는, 우리들 마음은 더욱 평화로워지고 넉넉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삶의 유일한 단짝인 죽음을 절대 소외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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